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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소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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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여인 민주화의 어머니 "하나님 품으로"
[부고] 故구춘회 장로, 모자이크 같은 '빚진 자'의 인생
2014년 01월 14일 (화) 04:40:46전현진  메일보내기 )( wjsguswlswls ) 

  
 (사진제공 고 구춘회 장로 유가족) 
 
새해를 맞은 뉴욕은 추위 소식으로 소란했다. 수십 년 만의 추위라는 말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어련히 추운 1월이지만, 갑작스런 한파에 놀란 표정이 거리에 역력했다. 예상 밖의 추위로 세상이 얼어붙은 그 때, 여성 신앙인으로, 그리고 어머니로 하 수상한 한국 현대사를 고국과 미국에서 누비던 故구춘회 장로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고령의 나이이지만, 그녀는 건강했다. 아니 건강하게 살아갔다. 수년 전 암 선고를 받은 그녀였다. 하지만 요양원에 거주하며 이웃과 함께 지내며 웃고 어울리던 모습은 여전했다. 

구춘회 장로는 1월 5일 새벽 뇌출혈을 일으켰다. 갑자기 정신을 잃어 쓰러졌고 머리를 심하게 부딪쳤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1월 8일 열린 천국환송예배는 한신대 후배이자 그녀가 출석하던 뉴욕 소금교회 담임 한종은 목사가 인도했다. 한 목사는 수년 전 어느 날 '한신대 후배가 교회를 개척했다기에 찾아왔다'며 방문한 구 장로를 처음 만났다고 했다. 

구 장로가 소금교회에 출석하면서 한 목사는 평범한 '할머니'의 모습에 비친 현대사 보게 됐다. 굴곡진 역사 속에서 그녀의 인생도 함께 보였다. 포화 속에서, 민주화의 거리 속에서, 그리고 어머니의 모습 속에서 말이다. 
  
 
 

▲ 고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 후 민주화 유공자들과 미국 망명 당시 인연들을 초대해 만찬을 연 자리에서 고 구춘회 장로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 제공 고 구춘회 장로 유가족)

 
 
거리의 여인, 민주화의 어머니
 

1930년 경기도 양평에서 7자매 중 다섯 째 딸로 태어난 구 장로는 1948년 고려대학교 간호학과에서 졸업해 당시 여성들이 선망하던 간호원이 된다. 요즘 같은 시절이었다면 평범한 간호사가 되어 한 남자의 아내와 어머니라는 일반적 '여성'의 모습에 갇혀 있었을 그런 삶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의 포화가 '평범'이라는 단어를 한국 땅에서 지워버렸다. 구 장로는 1950년부터 2년 동안 간호장교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구 장로의 삶을 추동한 원동력은 그녀의 신앙이다. 그 신앙이 그녀의 삶을 붙든 계기로 전쟁 중 겪은 참상과 개인적인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그녀의 두 아들은 1.4후퇴 당시 포격에 노출된 평양에 낙오됐었던 그녀는 구사일생으로 군함에 탑승하게 됐다고 한다. 죽음과 삶의 순간을 겪어낸 젊은 시절의 그녀는 이후 신학을 공부하기로 했다. 

부산에서 한신대학교 신학과에 들어가 신학을 공부한 그녀는 1956년 졸업했다. 그리고 다시 간호원 생활을 한다. 1960년에 결혼한 구 장로는 남편인 고 조기연 장로를 강원도에 살게 됐다. 강원 산골에 남편을 따라 온 그녀는 시골 마을 아녀자의 평범한 삶을 거부했다. 젊은 여성들의 각성을 요구하고, 시대의 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라고 강조해온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영향을 받은 셈이다. 구 장로는 한국기독교장로회여신도회 강원연합회의 초대 회장을 지내며 기독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 한국 기독교 여성운동의 대모인 고 이우정 교수는 한국여성교회연합회 활동(위) 이전부터 구춘회 장로와 인연을 맺어 평생을 친구로 선후배로, 신앙의 동역자로 함께 했다. 안경 쓴 이가 이우정 교수다. (사진 제공 고 구춘회 장로 유가족)

 
 
그녀의 삶을 이야기할 때 신학자이자 기독교 여성 운동가의 거두로 꼽히는 고 이우정 교수를 빼놓을 수 없다. 1967년 구 장로는 이 교수와 한국교회 여성연합회를 창립해 일본 원폭 투하 당시 피해를 입은 한국인들의 돕기 위해 나섰고, 일본인 기생관광 저지 운동과 민주화 운동으로 투옥하는 인사들의 가족을 돕는 운동을 전개했다. 

그녀가 일하던 한국교회여성연합회는 삼엄한 유신 시절을 함께 보낸 이들이 끊임없이 드나들던 사랑방이었다. 당시를 기억하며 조사를 보낸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이문우 총무는 "아버지와 아들, 딸을 감옥에 보낸 가족들이 선배님이 일하시던 301 호실로 몰려들어 억울함을 호소하며, 울고 기도하고 같이 대책을 간구 하곤 했"다며 회상했다. 

당시 구 장로는 민주화 운동으로 감옥에 갇힌 구속자들을 위해 변호사 선임 비용을 모금 하고, 감옥과 재판정을 따라다니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그들의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온 종일 거리를 뛰어다닌 그녀에게 '거리의 여인'이란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미주 한인 민주화 운동 앞장선 '신앙인' 

1970년 중반 구 장로는 미국으로 왔다. 미국에서 간호사직을 얻게 되었고, 여느 어머니들처럼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이민을 결정한 것이다. 

엄혹한 70년 대 한국 현실에서 벗어나게 됐지만, 미국에 정착한 뒤에도 그녀의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미주 한인 민주화 운동과 인권 운동 역사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 미국장로교 일원으로 여성연합회 실무자로 일하게 된 그녀는 미국교회협의회(NCCUSA)와 함께 미 전역을 돌며 암울한 고국의 정치 현실과 인권 문제를 알렸다. 

  
 
 

▲ 1970년 대 민주화 운동으로 구속된 고국의 수감자들의 석방을 호소하기 위해 수의를 입고 미 국무부 앞에서 시위하고 있는 고 구춘회 장로. (사진제공 고 구춘회 장로 유가족)

 
 
PCUSA와 UMC의 교회 대표들과 한인교회 인사들이 창설한 미주한국인권연합(North American Coalition for Human Rights in Kora)을 시작하는 데 많은 힘을 기울였다. 이 단체의 지도자로 있으면서 미국 정부에 한국 정치와 인권에 드리운 그림자에 대해 호소하고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여론 조성에 앞장섰다. 

또 유신정권을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는 '목요기도회'의 뉴욕 모임을 시작하는데 함께 해 매주 모여 조국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기도하고 눈물 흘렸다. 

열정적인 활동가인 그녀를 기억하는 구 장로의 자녀들은 미국에 와서도 열심을 내던 모습을 기억했다. 그녀의 작은 아들 조진용 씨는 10대 시절 영어 한마디 못하고 찾아온 미국에서 처음 찾은 여행지가 워싱턴 D.C.라고 했다. 민주화 운동으로 한국에서 투옥된 이들의 실상을 알리고 하루 속히 풀려나도록 미국 정치 심장부에서 호소하는 자리였다. 

조국의 민주화와 인권 운동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려던 그녀였지만, 두 아들에게 식사 한 번 제대로 차려주지 못한 것을 언제나 아쉬워했던 평범한 어머니였다.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았던 그녀였지만, 두 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언제나 애썼고 신앙을 나누려 했던 어머니였다. 

장남 조진호 씨는 2009년 암 선고를 받은 어머니를 모시고 형제와 함께 셋이서 떠난 여행이 어머니와 함께 보낸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갑작스런 병에 힘들어했지만 두 아들과 함께 보낸 아름다운 시간을 구 장로도 기뻐했다고 한다. 

노구를 이끌고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UN 비정부기구 모임에 참석하던 활동가였다. 한인 교회의 분쟁에 안타까워하고 때론 분노하면서 중재의 역할을 고민하던 지도자였다. 손자와 손녀에겐 언제나 다정한 할머니였다. 복음의 빚진 삶을 언제나 기억하며 평화와 정의 하나님을 기억하던 신앙인이었다.
  
 
 ▲ 고 구춘회 장로는 1월 9일 뉴욕주 롱아일랜드 모처에 안장됐다. ⓒ미주뉴스앤조이 전현진 
 
가녀린 여성으로 역사를 살아간 고 구춘회 장로. 누군가는 '내가 왕년에 말이야'하며 떠들어댈 법한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만들어왔지만, 그녀는 자녀들에게도 자랑삼아 과거를 말하지 않았다. 그저 신앙에 기대어 살아갔다 소명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리라. 그녀의 자녀들은 그런 구 장로의 삶을 두고 '모자이크' 같은 인생이라고 말했다. 그리워하던 친구들과 가족이 있는 곳으로 떠난 구춘회 장로는 그녀를 추억하는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모자이크 같은 모습을 드러낸다. 

구 장로의 장례를 인도하는 한종은 목사는 그녀의 삶 속에 신앙 안에서 빚어진 '부채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복음에 빚진 자로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빛이 세상의 어둠을 비춰가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무 같은 것이다. 빚진 자의 의무를 안고 산 구춘회 장로. 육신을 벗었지만 여전히 "그리스도의 향기"가 번져가는 이유다. 
  
 
 ▲ 구춘회 장로 장례 예배를 인도하고 있는 한종은 목사(뉴욕 소금교회). ⓒ미주뉴스앤조이 전현진 
 
전현진 기자 / jin23@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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